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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주관주의 포스팅

유머글을 보다가 시작된 평등에 대한 고찰

멋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단지 PC가 만연한 이시대에 평등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 하자면 영화속에선 ‘흑인’화장실과 ‘백인’화장실은 이제 없고 ‘평범한 화장실’ 이 있을 뿐이라 했다

이전의 불평등에대한 대가로 ‘흑인화장실’을 더 가까운곳에 배치하고 ‘백인화장실’을 더 먼곳에 배치하게되면 평등이 실현될 수 있을까?

흑인들에겐 과거의 보상이란 의미가 있을 순 있겠지만 분명히 결과적으론 인종간 갈등을 낳게되는 원인중 하나로 작용하게 될것이다

평등을 실현시키기로 했으면 그 시점을 과거와 분리시켜야 한다

평등을 내세우면 그 순간부터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기회의 평등을 이뤄냈으면 결과에 대해서는 굳이 또다시 흑인과 백인과 동양인의 비율, 남자와 여자의 비율에는 집중을 하지 말아야한다

‘백인화장실’과 ‘흑인화장실’을 없애고 화장실을 만든 그시점에 흑인과 백인의 화장실 사용률을 조사해서 ‘백인 변기칸’ ‘흑인 변기칸’을 갯수를 나누면 무슨의미가 있냐 말이다

과거의 불평등에 대한 보상을 중심으로 그리고 결과적인 평등이 중점이되는 인권운동이 펼쳐진 현재의 모습을 보아라

쿼터제가 불평등을 해소하는것 처럼 보이는가?

절대아니다 단순히 자격조건만을 평등하게 하면 될 것을 굳이 비율을 나눠 정작 이전의 불평등을 겪은 세대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며 불평등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만 그 혜택을 누리며 죄가 없는 현세대가 과거의 업을 짊어지고 가는 등 오히려 남여간의 불평등, 인종간의 불평등, 지역간의 불평등 등 온갖 불평등들은 역차별만 낳으며 갈등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당장에 잘못된 방향의 평등추구로 인한 부작용들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는 나사에서 ‘백인화장실’과 ‘흑인화장실’이 아닌 ‘화장실’만이 존재하는것 처럼 ‘남경’ ‘여경’이 아닌 ‘경찰’만이 ‘남군’ ‘여군’이 아닌 군인만이 ‘서양인 판사’ ‘동양인 판사’가 아닌 ‘판사’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다가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