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와 다른 모습으로 흥행을 이끌었던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영화가 2편이 나왔다.
마침 또 목요일이 개천절이었어서 휴일을 맞아 짬을 내어 영화를 보러 갔다왔다.
감상평들이 호불호가 많이들 갈리는걸로 알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정말 재밌게 그리고 기대했던 스토리로 만족하면서 보았다.
참고로 이 감상평엔 자세한 스토리에 대한 스포는 크게 없지만 결말 스포가 있으니 스포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즐겨찾기를 눌러놨다가 영화를 보고 다시 방문해주면 감사 ㅎㅎ
이번 조커 영화의 제목은 “조커: 폴리 아 되”로 ‘폴리 아 되’는 프랑스어로 공유정신병적 장애라는 뜻이다.
조커라는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특유의 영향력을 가진 캐릭터라는 점을 중점으로 그리고 그 영향력의 이면에 진실된 조커의 모습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영화의 스토리로 잡아서 그런지 제목을 대놓고 공유정신병적 장애라고 이름을 붙인것 같다.
어짜피 결말에 대해. 그리고 감독이 왜 이런 결말을 내놓았을까? 에 대한 이야기를 할것이니 결말부터 스포하도록 하겠다.
조커는 죽는다.
그것도 굉장히 볼품없게.
1편에서 조커의 광기를 아주 맛깔나게 그려냈고 또 그래서 영화를 넘어 현실의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았던 조커 스토리이기에 모두가 2편의 조커 또한 그 특유의 광기를 맛있게 그려냈을것이라 모두들 기대했겠지만..
2편은 전혀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뮤지컬 형식의 장면들을 차용하여 조커가 내면적으로 혼동하는 현실과 상상에 대한 광기를 중점으로 보여주며 ‘곧 터뜨려주겠지?’ 라는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게 만들지만 모두가 기대를 하던 폭력과 광기가 난무하는 그런 장면은 도무지 나오지 않고 도대체 얼마나 큰걸 터뜨리려고 그러는지 조커의 광기 게이지를 채우는 듯한 교도소 내의 억압적인 장면과 뮤지컬적인 느낌의 조커의 뇌내망상 장면들만 나온다.
그러다가 재판이 가까워 오면서 조커의 광기가 조금씩 세어나오는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재판이 시작되고는 변호사도 해임하고 조커의 분장을 하고 법정에 들어서서 말빨로 자기자신을 변호하며 법정을 농락하고 이제야말로 큰걸 보여주나? 개같이 탈주해서 또 광란의 폭력을 보여주나?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들지만..
이게 왠걸 ㅋㅋ
결국 법정의 압박감을 버티지못한 조커는 자신이 그저 장기간 지속된 사회적 괴롭힘에 참다참다 견디지못하고 한순간 실수를 했을뿐인 그저 운없는 불쌍한 사회 소외계층인 일개 정신병자뿐임을 토로하게 된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폭발로 법정의 벽이 폭발하고 조커는 도주하게되며 ‘그치? 다 훼이크였지? 이제 시작이지?’ 하는 기대를 잠시나마 다시금 하게 만들지만 응 아니야~
조커로써의 리더쉽과 광기를 보여주길 기대하는 지지자들을 뿌리치고 여주인공을 찾아가서 찐따스러움을 잔뜩 드러내더니 그냥 체포엔딩으로 끝이난다.
1편의 조커를 기대했을 많은 사람들은 이번 편을 보고 정말 허탈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은 ‘옳게 되었다.’ 이다.
난 1편을 봤을때 영화적 재미는 엄청 훌륭한 작품이지만 너무 걱정이 되었었다.
악당의 서사가 다른 대부분의 작품들의 악당 서사의 경우는 적당히 납득이 갈 정도의 스토리만 그려내고 극찬을 받은 다크나이트의 히스레저의 조커조차 그 서사의 중요성은 드러내지 않고 그저 광기 가득한 악당으로만 그려냈었다.
하지만 아서플렉 조커 1편의 경우는 그 서사가 너무너무나 현실속에 있음직한 모습으로 심지어 너무너무나 자세하게 서술되었고 물론 이는 현실에서도 극 극 악인 상황에 놓인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겠지만 애초에 자기자신이 어떤상황에 쳐했는지 그리고 그 상황속에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는 너무너무나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아서플렉의 모습을 자신의 모습에 대입하고 실수를 저지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로 분명 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게 너무나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함께 영화를 봤던 친구와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친구는 그냥 영화를 재밌게 봐서 그런지 이 서사를 너무나 자세하게 그려낸 것에대한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나의 의견에 공감을 못하는듯했다.
친구의 말로는 총쏘는 게임을 한다고 총기난사범이 되는건 아니지 않냐는 말로 반박했고 난 그게 요점이 아니라 그 총쏘는 게임조차도 악당이 왜 총을 잡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총기난사를 하게 되었는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화되어 공감하도록 스토리를 그리진 않는다는 말로 설명을 했지만 이 요점을 이해를 잘 못하는듯 보였다.
실제로 영화 개봉 이후 많은 지식인과 평론가들이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했고 이에 대해 소비자 쪽에 더 기울어져있는 리뷰어들은 대부분 이를 너무 확대해석해서 한 걱정이라고 이런 걱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었다.
그런데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저 칼로 적을 썰고 총으로 적을 쏘는 폭력을 컨텐츠로한 영화나 게임과 단순히 같은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억압에 눌려있던 사람이 사람이 미쳐서 사람을 죽이게 되는 그 과정을 납득하게 그리고 또 합리화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문제라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 ‘해롭다’라는 수식어가 너무나도 적절한 영화였다.
그리고 결국 현실에 끼친 영향력도 분명히 존재했다.
조커라고 하면 그저 조커라는 그 캐릭터를 지칭하는 말 뿐이었는데 이후로는 참지못하고 저질러버린 사람들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에 대해 단순히 과거에도 그런식으로 쓰이기도 했었다라고 반박할 사람들은 몇년전에 있었던 다수의 칼부림 사건 피의자들을 커뮤니티와 뉴스에서 어떤 별명으로 불렀었는지 그리고 이게 단순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현상인지를 잘 찾아보길 바란다.
물론 멀쩡하던 사람이 조커영화를 보고 미쳐서 저런짓을 저지르는건 아니다.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이미 장기간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던 시한폭탄 그자체였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중 분명 조커 영화가 트리거가 된 사람들도 있을것이고 ‘조커’가 이들을 지칭하는 사회적인 용어로 합의된 이 상황 자체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이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는것 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도 좋긴하지만 정상적인 일상을 살고 있으며 단순히 영화를 즐겁게 봤기에 조커 영화에 호감을 가지고 있고 나같은 염려어린 의견들을 과대해석이라고 생각을 하는 당신들과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법치아래에 사회적 합의 사항들을 준수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사건속에서 분명 절대로 ‘조커’의 역할로 있을 수는 없을것이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선이라는게 존재할때 애매한 영역에 걸쳐있는것도 아니고 너무나 분명하게 선을 벗어나있는 작품이기에 이런 작품에 대해 염려의 목소리가 나오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생각을 호아킨피닉스 조커 1편을 보고 생각했던 나였기 때문에 이번 2편은 세간의 평가와 다르게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옳게된 너무나 완벽한 영화였다.
1편의 조커는 대단한 사상적 지조를 통한 광기를 가진 수많은 광기를 내제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고 그저 우리 주변의 어디에나 있을법한 그런 안타까운 사람이 폭력성에 휩싸일 트리거가될 상황에 놓이게되어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을뿐
또 그 실수가 사람들에게 확대해석되어 수많은 군중의 기대아래에 놓이게되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역할 이상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려고 무리를 하다가 결국 그 본질은 순간의 화를 참지못해 범죄자 신세가된 별품없는 살인자일 뿐이라는걸 너무나 적나라게 그려주는
아주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1편의 해로움을 정상화 시켜주는 완벽한 ‘결’의 영화였다.